[김주대 시인의 '단순한 나의 시 창작론']
<1단계 - 미소를 밀다>
장애물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다
휠체어를 밀어준다는 것이 그만
몸속의 미소를 민 모양이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앞으로 밀려 나온 미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는 사진과 글이 서로를 보완해 주기 때문에 시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해도 그냥저냥 읽을 만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작품의 꽃을 피울 수 있는 詩의 종자(씨앗)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글에서 종자는 ‘몸속에 있는 미소를 밀었다’는 내용이다.
북한의 문예이론에 따르면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기본문제이고,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이며, 사상적 알맹이이다. 작품의 핵을 이루는 종자는 생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그 본질에 대한 심오한 인식에 기초하여 파악된 사상적 알맹이이다. 종자는 또한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바탕’ 을 말한다. 시의 핵심 소재나 창작동기에 대한 참고할 만한 좋은 이론이다. 나는 이번 시의 종자를 사진 속에서 얻었다.
<2단계 - 종자에 물주기> - 슬리퍼 여자
슬리퍼 여자가 턱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다
휠체어를 밀어준다는 것이 그만
여자의 이마 안에 감춰진 미소를 민 모양이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안면 쪽으로 환하게 밀려 나온 미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미소가 앞장서 간다
휠체어를 밀던 슬리퍼 여자가 이번엔
휠체어 여자의 미소에 웃으며 끌려간다
이 단계에서는 밀어주는 사람의 정체를 좀 더 분명하게 밝혀 휠체어에 앉은 여자와의 사이에 차별성을 둔다. 그러기 위해 뒤에서 미는 여자를 ‘슬리퍼 여자’로 지칭한다. 그리고 기왕에 마련해 둔 종자(‘몸속에 있는 미소를 밀었다’)에 물을 주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뒤에서 미소를 ‘민다’면 미소는 ‘앞쪽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한 물리적 현상일 것이다. ‘미소가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안면(얼굴)쪽으로 밀려 나온다’고 표현한다. ‘안면’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미소가 밀려 나온, 웃는 모습을 좀 더 확실하게 시각화한다. 그리고 ‘밀려나온 미소’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번엔 ‘앞으로 밀려나온 미소’가 뒤의 밀어주는 사람을 오히려 이끌고 가도록 역할을 바꾼다. 시의 꽃을 피우기 위해 가지치기도 하고 거름도 주는 것이다.
< 3단계 시의 완성> - 웃음을 끌고 가는 미소
사내가 턱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덜컥, 웃는다
휠체어를 밀어준다는 것이 그만
여자의 이마 안에 감춰진 미소를 민 모양이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안면 쪽으로 환하게 밀려 나온 미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미소가 앞장서 간다
휠체어를 밀던 사내가 이번엔
여자의 미소에 웃으며 끌려간다
미소가 웃음을 끌고 가는 언덕길 오후 <시>
마지막 단계에서 제목도 좀 근사한 것으로 바꾼다. 그리고 ‘휠체어를 미는 여자’를 ‘사내’로 바꿈으로써 휠체어를 미는 사내와 휠체어에 앉은 여자 사이의 은은한 사랑을 부추겨 본다. 그러면 두 사람은 창작자(시인)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작품 안에 미리 마련해 둔 언덕길을 올라가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상투적이지만 친숙한 내용으로 주제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휠체어를 밀던 사내’가 ‘미소(여자)’에 끌려간다, 는 내용을 첨가하여 사랑의 상생작용(이 말 좀 유치하다)을 드러낸다. 그리고 미소(여자)가 웃음(사내)를 끌고 가는 곳이 언덕길임을 밝혀 고난을 즐겁게 넘어가는 남녀의 사랑을 완성한다. 마지막에 <시>라고 딱 써 붙인다. 시를 고치고 다듬는 더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큰 틀만 3단계로 제시해 보았다.
시를 쓰는 이틀 동안 나는 ‘미소를 밀었다’ 는 내용만 중얼거리고 다녔다. “미소를 민다, 그러면 미소는 밀린다, 밀려나온 미소를 어떻게 할까, 앞으로 밀려나온 미소이니까 앞장서 가는 미소로 하자, 어쩌고 중얼중얼…….” 하면서 하루가 가고 중얼중얼하면서 새벽이 왔다. 가장 좋은 것은 잠자리에서 시의 장면을 상상하다 잠드는 것이었다. 좀 지쳤다. 중얼거리고 다니느라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랑의 첫 번째 법칙은 주관적이다. 주관적으로 질투는 사랑보다 더 깊고 또 사랑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즉 질투는 기호를 파악하고 해석할 때 사랑보다도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목적지이며 사랑의 최종 도달점이다.” -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지음) 중에서 -
들뢰즈의 이 말은 질투에 빠진 남자가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사건, 현상, 사물들이 의미 있는 기호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그 기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질투에 빠진 남자처럼 세상을 열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 때 시는 시작된다. 시는 세상을 꾸미기도 하지만, 세상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시는 이 세계를 살 만한 세계로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로 우리를 끌고 가기도 한다. 질투에 빠진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것이 단순한 나의 시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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