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명언

명시

앵두님 2015. 5. 1. 14:52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화(1900~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하여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십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습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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